누군가는 이별을 겪고 있고, 누군가는 인생의 방향을 고민한다. 20대는 감정의 폭이 넓고, 외로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시기다. 이럴 때 문득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영화 한 편이, 그저 흘러가는 듯한 음악과 흔들리는 화면이, 누군가의 혼잣말이 내 마음을 건드릴 수 있다. 그런 영화가 바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다. 이 글에서는 20대에게 이 영화가 왜 감성적으로 와닿는지, ‘이별’, ‘혼잣말’, ‘고독’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 이별이 끝나도, 마음은 남는다
중경삼림은 두 개의 사랑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경찰 223번(금성무)이 여자친구에게 차인 뒤 매일 유통기한 5월 1일까지의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들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은 이별이라는 상처가 사람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스며드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사랑의 유통기한도 정해져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혼잣말로 상처를 정리하려 애쓴다. 20대는 첫 이별, 깊은 상처, 자기부정의 감정을 처음으로 겪는 나이다. 이 영화는 그런 상처가 이상하거나 유치하지 않다고 말해준다. 오히려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통과의례라고, 그리고 그 감정은 유효하다고 조용히 위로해 준다. 특히 금성무의 무표정한 얼굴과 무심한 대사가 어쩐지 더 큰 감정으로 다가오는 건, 아마 그 속에 말하지 못한 아픔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2. 혼잣말이 많은 이유, 외로움이 많기 때문
이 영화의 인물들은 유난히 혼잣말을 많이 한다. 내레이션도 그렇고, 극 중 대사조차 누군가에게 하는 말보다는 자신에게 하는 말에 가깝다. 이는 왕가위 감독의 연출적 특징이자, 중경삼림이 가지는 가장 감성적인 요소 중 하나다. 20대는 관계가 가장 많은 시기이면서도, 가장 외로운 시기다. 인간관계는 많지만 정작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하고, 일기를 쓰고, SNS에 감정을 털어놓는다. 영화 속 혼잣말은 바로 그 공허한 마음을 닮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홍콩의 밤거리, 그 속을 홀로 걷는 인물들, 그리고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을 시각화한다. 특히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경찰 663번(양조위)은 이별 후 무너진 자신의 삶을 아무도 모르게 혼잣말로 지탱한다. 그는 매일 같은 카페에서 같은 메뉴를 먹고, 헤어진 연인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채 같은 공간에 머문다. 이 장면들은 “나만 이런가?”라는 생각이 드는 20대에게 “그렇지 않다”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듯하다.
3. 느리게, 천천히, 고독하게 흐르는 감정선
중경삼림은 빠른 전개나 자극적인 스토리 대신, 감정의 흐름과 리듬에 집중한다. 감정은 천천히 움직이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변해간다. 20대에게 이 영화는 속도를 늦추라는 위로가 된다. 주변은 모두 앞서나가고, 비교와 불안이 쌓이는 시기에 “지금 이 감정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말해준다. 특히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은 멍하니 바라보는 화면 위로 흐르며, 감정을 붙들고 있는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고독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내면을 정리하고 새로운 감정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걸 이 영화는 시적으로 보여준다.
중경삼림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이별을 겪고, 혼자만의 감정 속에 머무는 이들에게 잔잔하게 말을 건네는 영화다. 특히 감정의 진폭이 크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는 20대라면 이 영화가 주는 여운은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한 번쯤 멈춰 서서 혼자만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은 날, 중경삼림을 추천한다.